십여시 (十如是)

부처님이 성취(成就)하신 바는 가장 희유(稀有)하여
제일(第一) 알기 어려운 법(法)을 성취(成就)하셨느니라.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모든 법(法)의 실상(實相)을 능(能)히 연구(硏究)하여 다함이니,
이른바 모든 법(法)이
이와 같은 상(相)이며
이와 같은 성(性)이며
이와 같은 체(體)이며
이와 같은 역(力)이며
이와 같은 작(作)이며
이와 같은 인(因)이며
이와 같은 연(緣)이며
이와 같은 과(果)이며
이와 같은 보(報)이며
이와 같은 본말구경(本末究竟)등 이니라.




욕령게 (欲令偈)

중생(衆生)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智見)을 열으사,
청정(淸淨)함을 얻게 하는 고로,
이 세상(世上)에 출현(出現)하오며,
중생(衆生)에게
부처님의 지경(智見)을 보이고자 하므로,
이 세상(世上)에 출현(出現)하오며,
중생(衆生)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智見)을 깨닫게 함으로서,
이 세상(世上)에 출현(出現)하오며,
중생(衆生)으로
부처님의 지견도(智見道)에 들고자 함으로,
이 세상(世上)에 출현(出現)하느니라.

사리불(舍利佛)이여,
이것이 모든 부처님께서,
일대사(一大事) 인연(因緣)을 쓰는 고(故)로,
이 세상(世上)에 출현(出現)하느니라.

삼계(三界)가 편(便)치 않음이,
마치 불붙는 집과 같으며,
여러 가지 괴로움이 충만(充滿)하고,
심(深)히 겁이나고 두려움이라.
항상(恒常)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의 우환(憂患)이 있어,
이와 같은 불꽃이 성(盛)하여 쉬니 아니하나니,
여래(如來)는 이미 삼계화택(三界火宅)을 여의고,
편(便)하고 고요한 임야(林野)에 있으니
이 삼계(三界)는 다 나의 소유(所有)이고,
그 가운데 중생(衆生)은 다 나의 자식(子息)이니라.
지금(只今) 이곳에 여러 가지 환란(患亂)이 많으나,
오직 나 홀로만이 능(能)히 이를 구호(救護)하느니라.

나무붓다달마상가
나무붓다달마상가
나무붓다달마상가




묘법연화경 (妙法蓮花經) 여래수량품(如來수량品) 제16(第十六)
구원게(久遠偈)

내가 성불(成佛)해 옴으로부터, 지낸 바의 모든 겁수(劫數)는, 한량(限量)이 없는 백천만억(百千萬億) 아승지(阿僧祗)라, 항상(恒常) 법(法)을 설(說)해서 수(數)가 없는 억만(億萬)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여, 불도(佛道)에 들게 함이니라.

이와 같이 하여 옴이 한량(限量)없는 겁(劫)이니,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기 위(爲)하는 고(故)로, 방편(方便)으로 열반(涅槃)을 나타냄이나, 그러나 실(實)은 멸도(滅度)하지 않고, 항상(恒常) 이에 머물러 법(法)을 설(說)함이니라.

내가 항상(恒常) 이에 머물러있어, 모든 신통력(神通力)으로, 전도(顚倒)된 중생(衆生)으로 하여금, 비록 가깝게 하나 보이지 않게 하노라.

중생(衆生)이 나의 멸도(滅度)함을 보고, 널리 사리(舍利)에 공양(供養)하며, 다 연모(戀慕)의 마음을 품어서, 갈앙(渴仰)하는 마음을 냄이라.

중생(衆生)이 이미 신복(信服)하여, 질직(質直)하여 뜻이 부드러우며, 일심(一心)으로 부처님을 친견(親見)하고자, 스스로 신명(身命)을 아끼지 아니 함이라.

이때 나와 여러 중생(衆生)이, 함께 영축산( 靈祝山)에 나와서, 이때 내가 중생(衆生)에게 말하되, 항상(恒常) 여기에 있어 멸(滅)하지 아니하건만, 방편력(方便力)을 쓰는 고(故)로, 멸(滅)과 불멸(不滅)이 있음을 나타내노라.

다른 나라 중생(衆生)이 공경(恭敬)하고 믿고 즐거워하는 자(者)가 있으면, 나는 다시 그들 가운데서, 위(爲)하여 위없는 법(法)을 설(設)하건만, 너희들은 이를 듣지 못하므로, 다만 내가 멸도(滅度)하였다고 생각하느니라.

내가 모든 중생(衆生)을 보니, 고해(苦海)에 빠져 있음이라.
이런 고(故)로, 위하여 몸을 나타내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갈앙(渴仰)하는 마음이 나게 하여, 그 마음이 인(因)이 되어 연모(戀慕)케 하고, 나와서 위(爲)하여 법(法)을 설(說)하느니라.

신통력(神通力)이 이와 같아서, 아승지겁(阿僧祗劫)에 항상(恒常) 영축산(靈祝山)과 다른 모든 곳에 있노라.

중생(衆生)이 겁(劫)이 다하여, 큰불에 타려할 때에도, 나의 이 땅은 안온(安穩)하고 천인(天人)이 항상 가득 참이라. 원림(園林)과 모든 당각(堂閣)은, 가지가지의 보배(寶貝)로 장엄(莊嚴)되고, 보배(寶貝)나무에는 꽃과 열매가 많아, 중생(衆生)이 즐거이 놀 곳이니라.

모든 하늘이 하늘북을 치고, 항상(恒常) 여러 가지의 기악(器樂)을 지으며, 만다라(曼多羅)의 꽃을 내려, 부처님과 대중(大衆)에게 흩음이라.

나의 정토(淨土)는 헐리지 않건마는, 그러나 중생(衆生)은 불에 다 타니, 근심과 두려움과 모든 괴로움이, 이와 같이 가득 참을 봄이라.

이 모든 죄(罪)의 중생(衆生)은, 악업(惡業)의 인연(因緣)으로써, 아승지겁(阿僧祗劫)이 지나도록, 삼보(三寶)의 이름조차 듣지 못함이라.

모든 공덕(功德)을 닦아서, 부드럽고 화(和)하며 질직(質直)한 자(者)는, 다 나의 몸이 곧 여기에 있어, 설법(說法)함을 봄이니라.

어느 때는 이 중생(衆生)을 위(爲)하여, 부처님의 수명(壽命)이 한량(限量)없다고 설(說)하며, 오랫동안 부처님을 친견(親見)하는 자(者)에게는, 위(爲)하여 설(說)하되, 부처님을 만나기 어렵다 하느니라.

나의 지력(智力)은 이와 같아서, 지혜(智慧)의 광명(光明)으로 비치되, 수명(壽命)이 수(數)없는 겁(劫)이니, 오랫동안 업(業)을 닦아 얻은 바이니라.

너희들 지혜(智慧)있는 자(者)는, 여기에 의심(疑心)을 내지 말라.

마땅히 죄업(罪業)을 끊어, 영원(永遠)히 다할지니 부처님의 말씀은 진실(眞實)이고 헛됨이 없노라.

마치 의원(醫員)이 좋은 방편(方便)으로, 미친 아들을 다스리기 위(爲)하는 고(故)로 실(實)은 살아있건마는 죽었다 말하되, 는(能)히 허망(虛妄)을 설(說)하지 않은 것과 같이, 나도 또한 세상(世上)의 아버지가 되어, 모든 고통(苦痛)을 구(救)하는 자(者)라.

전도(顚倒)된 범부(凡夫)를 위(爲)하여, 실(實)은 있건마는 멸(滅)한다고 말함이니라. 항상(恒常) 나를 보는 까닭으로, 교만(驕慢)하고 방자(放恣)한한 마음을 내며, 방일(放逸)하고 오욕(五慾)에 착(着)해서, 악도중(惡道中)에 떨어지느니라.

나는 항상(恒常) 중생(衆生)이 도(道)를 행(行)하고, 도(道)를 행(行)치 아니함을 알아서 응(應)하여 제도(濟度)될 바를 따라, 위하여 가지가지의 법(法)을 설함이니라.

매양(每樣) 스스로 이 같은 생각을 하되, 어떻게 하여서 중생(衆生)으로 하여금 무상도(無上道)에 들어, 속(速)히 불신(佛身)을 이룩하게 할 가 하노라.